어릴적부터 저와 제 동생을 돌보아 주신,
늘 우리 편이셨고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신,
그 누구보다도 우릴 손꼽아 기다리신 우리 할머니.
간암을 투병하신지도 어언 2년 반.
그리 갑작스러운 죽음도 아니었는데 마음이 얼마나 메이던지. 몸은 얼마나 떨리던지.
입관식 때 할머니 얼굴에 화장을 시켜놓은 모습을 보니 '우리 할머니. 정말 돌아가셨구나' 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몸에 로션만 발라드리는 것도 소스라치게 싫어하셨었는데. 평생 얼굴에 뭘 바른 적이 없다면서 자랑스러워 하셨는데...우리 할머니 고집에 그 칼 같은 신념에 누가 본인 얼굴에 립스틱과 아이셰도우를 바르게 냅두시진 않았겠죠. 왜 우리 할머니를 우리 할머니답게 보내드릴 순 없는건지. 왜 평생 지켜온 신념을 단지 죽었다는 이유로 저렇게 무너뜨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장례 도와주시는 분이 여러 천으로 할머니 시신을 꽁꽁 싸매는데 할머니가 그 안에서 성내시면서 '난 싫다!' 몸부림치질 않으시니 전 시선을 들어 하늘나라에서 멀쩡한 팔다리로 나비처럼 살랑살랑 뛰며 즐거워 하실 할머니를 상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일동안이나 치르는 장례식에 많은 분들이 와 주셨지만 막상 할머니를 기억하고 저를 위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에 전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했습니다. 한참동안 할머니의 고된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고 누구 하나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가시지도 못 한채 멀리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아버지 손님들에게 찾아가 인사하고 장래, 학업, 배우자에 대해 얘기하는게 알게모르게 힘들었는지 제가 잘 아는, 우리 할머니도 알았던 이모들과 아버지 한국 교회 초기 멤버들을 보니 서럽고 속상했던 마음이 눈물로 흘러 내리더군요.
대전까지 또는 서울 현충원까지 와 주신 분들. 문자로 많은 위로와 하늘소망을 상기시켜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그냥 식당같은 분위기의 장례식장에 가운데서도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개인적으론 서너사람한테밖에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많은 분들이 위로 해 주시고 신경 써 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우리 할머니, 이옥순 권사님, 정말 멋지셨습니다.
성격은 칼 같고 화끈하셨고 모든 일처리는 확실하게 하시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군목이셨던 남편과 후에 목사가 그리고 선교사가 된 아들을 끝까지 가슴에 두고 섬기셨죠.
남편을 일찍 여의시고 막내 아들까지도 몇 년 전에 잃으셨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곧게 버티신 여자 대장부이십니다. 이젠 그렇게 금실이 좋으셨다는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하나님 품 안에서 절 바라보고 계시겠죠? 제가 '할머니, 아무리 천국이 좋아도 저 결혼할 때까지만 다시 이 땅으로 와 주세요' 라고 부탁하면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대답하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