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3, 2014

+eulogy

한국에서의 연고지를 잃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저와 제 동생을 돌보아 주신,
늘 우리 편이셨고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신,
그 누구보다도 우릴 손꼽아 기다리신 우리 할머니.

간암을 투병하신지도 어언 2년 반. 
그리 갑작스러운 죽음도 아니었는데 마음이 얼마나 메이던지. 몸은 얼마나 떨리던지.
입관식 때 할머니 얼굴에 화장을 시켜놓은 모습을 보니 '우리 할머니. 정말 돌아가셨구나' 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몸에 로션만 발라드리는 것도 소스라치게 싫어하셨었는데. 평생 얼굴에 뭘 바른 적이 없다면서 자랑스러워 하셨는데...우리 할머니 고집에 그 칼 같은 신념에 누가 본인 얼굴에 립스틱과 아이셰도우를 바르게 냅두시진 않았겠죠. 왜 우리 할머니를 우리 할머니답게 보내드릴 순 없는건지. 왜 평생 지켜온 신념을 단지 죽었다는 이유로 저렇게 무너뜨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장례 도와주시는 분이 여러 천으로 할머니 시신을 꽁꽁 싸매는데 할머니가 그 안에서 성내시면서 '난 싫다!'  몸부림치질 않으시니 전 시선을 들어 하늘나라에서 멀쩡한 팔다리로 나비처럼 살랑살랑 뛰며 즐거워 하실 할머니를 상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일동안이나 치르는 장례식에 많은 분들이 와 주셨지만 막상 할머니를 기억하고 저를 위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에 전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했습니다. 한참동안 할머니의 고된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고 누구 하나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가시지도 못 한채 멀리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아버지 손님들에게 찾아가 인사하고 장래, 학업, 배우자에 대해 얘기하는게 알게모르게 힘들었는지 제가 잘 아는, 우리 할머니도 알았던 이모들과 아버지 한국 교회 초기 멤버들을 보니 서럽고 속상했던 마음이 눈물로 흘러 내리더군요.

대전까지 또는 서울 현충원까지 와 주신 분들. 문자로 많은 위로와 하늘소망을 상기시켜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그냥 식당같은 분위기의 장례식장에 가운데서도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개인적으론 서너사람한테밖에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많은 분들이 위로 해 주시고 신경 써 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우리 할머니, 이옥순 권사님, 정말 멋지셨습니다.
성격은 칼 같고 화끈하셨고 모든 일처리는 확실하게 하시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군목이셨던 남편과 후에 목사가 그리고 선교사가 된 아들을 끝까지 가슴에 두고 섬기셨죠.
남편을 일찍 여의시고 막내 아들까지도 몇 년 전에 잃으셨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곧게 버티신 여자 대장부이십니다. 이젠 그렇게 금실이 좋으셨다는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하나님 품 안에서 절 바라보고 계시겠죠? 제가 '할머니, 아무리 천국이 좋아도 저 결혼할 때까지만 다시 이 땅으로 와 주세요' 라고 부탁하면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대답하시겠죠.

'지랄하네.'

Sunday, February 2, 2014

Han.

It started with Pastor Ventura.
He started calling me "Hani" when I first met him and it stuck with me since then.
But people who had met me before then knew me as "Han," short for Han Gyeul.
And this year, I got to see and spend some time with some of those people.

Yes, that's you:
You who met me even before I knew how to ask a proper question in Spanish.
You who welcomed me into your little cliques regardless.
You who grew up with me in height and in maturity, who went through the horrible hurricane Isidoro, who were sitting in class when Armando came in to break the terrible news of 9/11.
You who gave me many rides home after parties since my parents would sleep early.
And you, who helped me grow up, encouraged and shaped me in my adolescent years.


Now we are talking about further studies, jobs, future, and ideal spouse.
We don't reminiscence so much but we talk present. We talk future.
We remember our past together without saying much about it. We play with several ideas to see each other again.


It was weird to be called "Han" again after so long, but it felt good, it felt right.
It felt good knowing that you still treat me as if we had been in constant touch,
that you still show more respect than jealousy,
that you still care.

Due the limited time of my stay, I didn't get to see all the people I wanted to see.
Please accept my apology and know that Merida is so much more than its exquisite food and beautiful centro because of you. Each corner paints a memory in my mind and your yucateco accent brings me comfort.

I realized how much I had missed you the instance I saw you.
I realized how much I would miss Merida the instance I heard your latest news.
Let us try our best wherever we are, hoping our paths will cross again, knowing that we can always count on each other.